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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호랑이] 배우의 연기에 대한 정의

고3때 전날에 있었던 ‘여명의 눈동자’ 이야기를 들으러 아침이면 내 주위에 여러명이 모여들었다. 당시 최고 인기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밤 10시에 시작하여 11시에 끝나는 고3학생은 절대 볼 수 없던 드라마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은 열심히 해서 못보고 열심히 하지 않는 애들은 노느라고 못 보던 시절이었다. 난, 그 드라마는 반드시 봐야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부모님을 설득했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다음 날, 내 주위에 모인 반 친구들에게 주요 장면을 직접 연기하며 얘기해 주었고 아이들은 너무 실감난다고, 대학가면 반드시 연극을 하라고 말 해 주었다. 그래서 난, 입학하고 첫 등교일 3월 2일에 연극반을 찾아갔다.

그 이후, 주연은 못 했지만, 4학년 졸업하는 그 학기에도 연극을 했다. 연기, 조명, 기획, 연출까지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연기는 하고 싶어서 지원하고, 연습하면서 왜 하려고 했는지 후회하고, 공연하면서 정말 후회하고,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더 잘할걸 하면서 후회하지만 다음 공연에 또 지원을 했다.

왜 연기를 하려고 하는지 선배들이 물어보면 다른 사람의 삻을 살아볼 수 있어서 좋다는 상투적인 대답만 했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공연이 끝나자, 새로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대에서 내가 쳐다보는 곳을 관객은 쳐다본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고 내가 숨을 참으면 같이 숨을 참는다. 내가 울면 같이 울고 내가 웃으면 같이 웃는다. 나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주고 관객은 그것을 받고 또 기대한다.

연기는 무엇일까? 내가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처럼 흉내내는 것. 아니 흉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이 말이 맞는 것일까? 그렇다면 관객에게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한 때, 아들에게 사진이라는 것은 내가 보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고 싶어해서 찍는다고 했다. 그림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 생각, 주장 등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연기는?


내가 극 속의 그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느끼는 것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연기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어느 창고에서 재연한다고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모든 것이 연기이고 장소도 소품도 심지어 여기 있는 사람들도 연기자라고 내놓고 말한다. 수백억을 들어 실제같은 셋트장을 만들어 놓고 영화를 만드는 요즘에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설마, 또 눈물팔이인가? 세월호에 대해 역사적 사실은 기록으로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한다. 하지만, 다큐 형식이 아닌 극 형식을 채용하면서 이렇게 까지……..

위 사진은 주인공이 잠수를 하여 세월호 내부를 수색하다가 앞에 보이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극장의 큰 스크린의 대부분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연기자의 눈과 표정이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왜 훌륭한 작품인지 보여준다. 연기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눈 앞이 어떤 처참한 모습인지 보여주지 않아도 연기자의 연기만으로 상상이 가고 놀라움이 아닌 슬픔이 앞서게 된다. 만약 앞의 모습을 실제 모습으로 만들고 스크린에 보여줬다면 슬픔보단 처참함이 앞섰을 것이다.

정윤철 감독의 연출력과 이지훈 배우의 연기력으로 너무나도 큰 세월호 잠수부의 얘기를 사람 중심으로 풀어갔다. 오로지 연기에 의지한 연출력과 그 연기를 통해 인물의 감정, 느낌,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세월호라는 무거운 이야기, 누군가는 이 무거운 이야기를 담아내 역사에 남겨야 한다. [바다호랑이]는 영화이면서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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